<<포근한 포용>> 2024 김천시립미술관 x 국립현대미술관 나눔미술은행 기획전
임춘희 <향나무>
Im, Chun-hee <Cedar>
- 2015-2017, 캔버스에 유채, 162×130㎝.
- 2015-2017, Oil on canvas, 162×130㎝.
향나무는 집을 둘러싸고 있는 가까운 풍경이다. 나에게 나무는 자연의 표면이나 회화적 표현의 대상뿐만 아니라,내 자신의 심상과 존재의 뿌리까지 투과된다. 자연은 삶의 지표로, 성찰의 대상으로서 나와 호흡한다.
임춘희의 작품은 풍경, 또는 풍경이 있는 인물로, 누군가에게 ‘고백’한다. 그녀의 작품은 구상이 추상이 될 수 있고, 추상이 또 다른 구상을 떠올릴 수 있는 형상회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 같은 변화무쌍한
전이는
나무, 인간, 예술 모두에 관철되는 변신에 기인한다. 그것들은 상이한 여러 요소들의 집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임춘희의 작품에서 지상의 기념비적인 존재인 나무가 완전히 분화된 형태를 갖춘 것은 많지 않다.
대부분 초록 덩어리로서 나타나는 미분화된 상태이다. 식물의 본질처럼 드러나는 초록 덩어리들은 무엇으로도 변신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풍경자체가 표현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풍경 속 인물은 풍경 속의
풍경,
또는 인물 속의 인물(그리고 내 안의 나)이라고 할 수 있다.
노준 <Comfy Chair with Sudaru(안락한 의자와 수다루)>
Noh, Jun <Comfy Chair with Sudaru>
- 2007, 레진플라스틱, 혼합재료(석고, 먹), 75×35×38, 71×30.5×43㎝.
- 2007, Resin plastic and mixed media(plaster and ink), 75×35×38, 71×30.5×43㎝.
친근감 있는 아기자기한 동물 형상으로 만화 같은 신세계를 만들어낸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자동차 도료로 채색된 수달, 펭귄, 강아지 같은 캐릭터들은 동심의 세계에서 이제 막 빠져 나온 듯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들의 뒤에는 어김없이 캐스팅에 사용된 겉틀인 ‘mother'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화려하게 주목받는 작품(son)의 모체로서 용도를 다해 버려질 운명에 처한 겉틀. 이것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작가는
인간의
외면과 내면, 존재와 소멸의 관계, 현실과 몽상의 사이를 무겁지 않게 관조하게 한다.
노준 <Like A Flowing River-Clo Twins>
Noh, Jun <Like A Flowing River-Clo Twins>
- 2021, 플라스틱에 우레탄, 29×33×21㎝.
- 2021, Urethane paint on plastic, 29×33×21㎝.
노준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 캐릭터들은 조각적 규범의 틀에 갇혀서 미술사의 대상으로서 객체화된 작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인간의 속성이 주입되고 의인화되어 작가 혹은 감상자의 존재감이 투영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노준과 그의 작품과의 관계는 명확하게 분리가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작품 속의 동물들이 보여주는 표정이나 동작들은 아동들의 장난감처럼 비현실적인 외관과 속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와 행동, 그리고 더 나아가 때로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는 표정과 행동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노준의 작품들을 인간을 대신하는 동물의 형상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노준의 작품이 이러한 맥락에서 오랜 동안 지속되어 오면서 점점 더 넓은 관심과 애정을 받아왔음에도 일부에서는 소재의 한정성이나 캐릭터들이 갖는 퇴행성을 염려하는 시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미 이 점을
감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 가운데 부조 형식의 캐릭터 표현과 작품 표면의 래핑(wrapping) 등은 작품의 주제로부터 조형성으로 표현을 확대하는 시도로 읽혀지며, 구름을 뚫고 고개를 높이
든 기린의
모습의 표현 등에서는 문학적 서사와 철학적 사고로까지 주제가 확대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안희진 <보통사람 예순일곱 >
Ahn, heejin <ordinary person 67 >
- 2022, 캔버스에 아크릴, 미디엄 페이스트, 53×53㎝.
- 2022, mixed media on canvas, 53×53㎝.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엔 슬프면 울고 기쁘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으며 자신의 감정들에 솔직하고 어떠한 감정이든 동등하게 대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라나면서 어떠한 감정은 속에 담아두고 다른 감정은
밖으로 내 비치며 감정에 있어서 구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나누어지는 감정들에 좋고 나쁨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속에 담아두는 감정이라 해서 나쁜 감정이고 밖으로 드러낸다 해서 좋은 감정이라 나눌 수는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삶이란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모습이라 생각하는데, 때론 슬프고 때론 행복하게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마주하는 감정에 충실히 그 순간의 감정을 태우며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인간다우며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삶을 살아가면서 느꼈던 모든 감정들은 불필요한 부분이 없이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함께 담으려고 노력하는데, 저에게 감정이란 하나의 덩어리진 형태가 아니라 굉장히 복잡한 형태로 소용돌이친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감정이 매우 복받쳤을 때 이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하나의 감정이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도 그 사이사이에 다양한 감정들이 함께 존재하며 느껴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감정들의 다양한 형상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김혜나 <하얀공기>
Kim, Hye-na <White atmosphere>
- 2023, 캔버스에 유채, 91×91㎝.
- 2023, Oil on canvas, 91×91㎝.
도시엔 새가 많다. 나는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싸인 시내 한복판에 살고 있는데 아침마다 새소리에 잠이 깬다. 그리곤 새들은 이 삭막한 환경 어디서 어떻게 이렇게 잘 살고 있나 궁금해지곤 한다.
작가와 갔던 산책은 봄이 끝나고 여름이 틀 무렵이다. “흐르는듯한 자연물의 형상, 아름다운 색, 나의 멋진 기억들이 녹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김혜나 작가는 그녀의 삶에 녹아있는 주변 풍경과 일상의
사물을 추상화로
표현하는 작가이다. 작업실 뒤의 작은 동산, 조금 더 멀리 나가면 한강변을 좋아한다는 작가와 함께 그녀의 작업에 아름다운 영감이 되고 있는 뒷산으로 향했다. 작업실에서 나와 조금 올라가니 제법 울창한 숲이
나온다.
봉제산 끝자락이다. 그녀는 강아지 코코의 배변봉투와 새모이, 다람쥐를 위한 견과류, 쓰레기 비닐봉투를 가방에 넣고 걷는다.
어릴 적 살던 동네와 이어지는 산길이 있는데 어느 날은 일부러 가기도, 피해 돌아가기도 한다. 그녀에게 산책은 “엄마와 함께 걸으며 옛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에선 잔뜩 그림을 그리는” 일상이다.
숲길로 들어선다. 그녀를 따라 오르내림을 이어가다 작은 공터에 다다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빛나는 햇살 조각과 바람, 그리고 다양한 새소리, 발에 스치는 풀잎…… 뻔한 풍경인데 찬란하고 기이하다. 자주 머문다는
그 공터에 잠시 멈춰 서서 나무 사이를 걷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잊어지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다. 갈림길에서 올라올 때와는 다른 길을 선택해 마을로 내려왔다. 다시 시멘트와 콘크리트다. 그런데
방금 전의
새소리와 바람 덕에 회색은 더 이상 우중충하지 않다. 산책은 그녀의 그림처럼 스치는 풍경의 윤곽을 선명하게,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아름답고 다르게 보여주는 경험이었다.
윤진석 <시계는 내 친구#3>
Yoon Jin Suk <watch is my friends #3>
-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51.7×71.5㎝.
- 2022, mixed media on canvas, 51.7×71.5㎝.
저는 어려서 부터 시계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늘 다녀왔던 장소의 시계를 기억해서 시계앞면을 그리고 시계뒷면을 그리는 능력이 남달랐습니다. 시계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시계는 어릴적 힘들었던
저를 위로해 주는 존재였습니다 어떤 장소를 가더라도 시계는 늘 비슷한 자리에 있었고 시계를 보며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사람들과의 소통에 대한 어려움에 안정을 찾고자 헀습니다.
시계 그림에는 빼곡히 시계를 관찰했던 곳의 명칭이 쓰여져 있습니다. 남구보건소,백조세탁소,도성상회,,소나무집등 시계속에는 그떄의 여러 감정과 고민들이 있습니다. 청도오리백숙시계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고,
바우왕갈비시계를 생각하면 불안한 감정이 떠오르고,그랜드호텔 수영장시계를 떠올리면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작품속 35개의 시계그림은 캔버스천에 시계를 그려서 아크릴물감과 아크릴 마카를 사용해서
채색을 하고 잘라 붙여서 그림자를 그려 넣고 장소를 기록했습니다 . 저에게 있어 시계는 안정과 평화,치유,친구같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신현채 <나의 외로운 시간 속 감정 친구들>
Shin Hyunchae <My emotional friends in my lonely time>
-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60.6×72.7㎝.
- 2022, Acrylic on Canvas, 60.6×72.7㎝.
나는 늘 외롭다. 장애인과도, 비장애인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다.
그래서 나는 많은 상상의 친구들을 만들어 낸다. 그들에게 나의 상황과 감정을 투영시키고 마음을 나눈다.
예를 들면 셰이드신이라고 적혀 있는 큰북 캐릭터인 크드람과 작은북 캐릭터인 작드람은 내가 특수학교 밴드부 시절 큰소리로 떠들고 노래해도 아무도 야단치지 않았을 때 느낀 시원함과 해방감의 기쁨을 표현했고,
사자갈기해파리 수인 캐릭터는 보호자 없이는 먼 곳에 가지 못하는 나의 처지를 슬퍼해 우울해진 감정을 표현했다. 케르베로스 포도 캐릭터는 머리가 3개인데 내 머릿속이 이상한 생각들로 불안해지는 경우를 ,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히스테릭해질 때의 모습은 검은 박쥐꽃 캐릭터로 나타냈다. 이 밖에도 장수도룡뇽 캐릭터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서식지를 잃어 갈 곳 없는 처지가, 대학을 졸업한 후 갈 곳 없는 나의 미래가 될까
불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특히 눈에 띄게 많은 음식 캐릭터 친구들은 평생을 건강을 위해 먹고 싶은 음식들을 조절해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 힘듦과 동시에 먹는 즐거움을 함께 여러 음식 캐릭터로 표현해 보았다.
물론 즐겁고 기쁜 마음을 나타낸 카나리아와 엘프를 합친 삐에리아 캐릭터도 있고,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끝내고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의 성취감을 나타낸 오렌지 모양 오랜곰도 있고, 가족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격려를
받아 행복한 나라비란 애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감정들을 사람들에게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나는, 그들과 묻고 답하며 그 외로운 시간들을 견딘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수많은 감정들과 상황들을 작품을 하며 내 나름대로 정리하며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며 자존감 뜨겁게 살아나 갈 것을 나는 믿는다.
황성제 <흥미진진 도시의 빌딩>
Hwang, Sung-je <An exciting city building>
- 2022, 캔버스에 아크릴, 71.5×89.5㎝.
- 2022, Acrylic on Canvas, 71.5×89.5㎝.
나는 내가 만든 창작 로봇캐릭터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창작로봇들은 다 내친구들이며 나자신이기도 합니다. 내가 가고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일들과 재밌는 일들을 상상을 하며 그 생각들을 그림으로
그려냅니다.
이번엔 복잡하고 재밌는 빌딩을 그려 보았습니다. 나는 복잡하고 흥미진진하며 재밌는 도시의 빌딩이 좋습니다. 도시의 빌딩속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사람도 있고,
도망가는 도둑과 쫒아가는 경찰들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그곁에서 짝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하수구에서 인어를 잡는 사람도 있고 벽을 타고 내려오는 곤충을 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재밌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진 도시의 빌딩속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일들을 하며 조화롭게 흘러갑니다. 회색빛의 빌딩이 가끔은 차가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속에서 누군가는 행복하고 즐겁게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도시의 빌딩이 너무 재밌고 좋습니다. 당신에게 도시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끼바위쿠르르(조지은) <덩굴연대기>
ikkibawikrrr(Jieun, Cho) <The Vine Chronicle>
- 2016, 2채널 비디오, 피그먼트 프린트, 8분 46초.
- 2016, Two channel video, pigment print, 8m 46s.
이렇듯 믹스라이스가 식물과 나무처럼 진부하게 여겨지기 쉬운 소재에 천착하는 중요한 이유는 개발을 둘러싼 기억의 소실이라는 불안감에서 연유한다. 오래된 나무는 예로부터 마을공동체의 중심이었으며, 토속신앙의
대상으로서
기도와 염원의 중심자리에 있던 나무들은 보이지 않는 차원과 이 세상을 연결하는 존재였다. 시간의 기록자로서 나무는 실제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오랜 시간의 무늬의 현현이다. 예전에는 나무를 신의 몸체라고 여겨
나무가 죽어도
제를 지내는 전통이 있었으나, 이제 제주도에서는 신목들이 덩굴과 잡초 속에 방치되어 찾아보기도 어렵다. 심지어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나무와 함께 진화하는 마을마저도 4대강 사업으로 침수되었다.
새로운 ‘공동체’ 인 아파트촌은 계급사회의 배타적 커뮤니티이며,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은 물론 욕망의 대상이자 투자의 방법임은 말할 나위가 없는데, 여기에 나무는 그 가치를 높여주는데 봉사하는 꼴이다. 한
천년수는 지금 경북
군위댐 물 속에 자리했었는데 현재는 반포와 동천 아파트단지의 조경수로 전락했다. “천년 시간의 무게와 거리”는 실제 역사와 이야기들의 관계로부터 끊기어, 정량화된 토지위에 규격화된 디자인을 적용하여 쌓아 올린
아파트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자크 아탈리 Jacques Attali는 음악의 변천사를 논하기를, 오래전에는 음악은 공동체의 공간에서 함께 제의식의 차원에서 음악을 공유했으며, 18세기 이후로는 한정된 공간에 돈을
지불하고 입장하여 남들과
함께 음악을 소비하게 되며, 20세기 후반에는 귀에 꼽고 홀로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지적한다. 이와 흡사하게, 공동체에서 신성성을 지녔던 신목은 아파트단지 내부라는 배타적인 공간에 이식되어,
아파트 소유주들은
자신의 브랜드화된 아파트의 계급적 차별성과 명성을 보완하는 상징적 존재로서의 고목을 소비한다...
그들의 작업은 개발과 폭리의 추구라는 거대담론에서 잃어버린 공동체의 기억들, 개인의 삶과 이야기들, 시간의 파괴와 잠식에 대한 애도이다.
김기석 <눈과 바다>
Kim, Ki-seok <Snow and the sea>
- 2022, 캔버스에 아크릴, 116.8×91㎝.
- 2022, Acrylic on Canvas, 116.8×91㎝.
작품 <눈과 바다>는 린넨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표현했다. 페인팅 과정에서 붓, 나이프와 함께 뿌리기, 글레이징 기법을 사용했다.
<눈과 바다>는 검고 굵은 프레임에 의해 구분된 두 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작업에서 이러한 구분은 자주 사용된다. 두 영역은 프레임의 이쪽, 즉 프레임이 존재하는 세상과 프레임의
저쪽, 즉
프레임을 통해 보는 세상이다.
<눈과 바다>에서 이 두 세상은 각각 미완의 이상향(혹은 현재)과 도피처(혹은 망명지)이다. <눈과 바다>의 미완의 이상향은 화려함을 지닌 한계적 상황에 대한 것이다. 뛰어드는
자세로다이빙대에 걸쳐 있는 사람. 몸부림치듯
격렬하지만 끝내 뛰어내릴 수 없다. 이 사람이 향하는 아래쪽 노란 부분으로부터 시작되는 위쪽의 노란 선들. 이들은 네온사인처럼 빛나는 동시에 건물의 윤곽, 즉 텅 빈 채로 기호가
되어 대상을 대체하고 있다.
도피처란 현재(미완의 이상향)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상상 속 도처를 의미한다. 현재를 미완이게 하는 제약으로부터의 탈출이라면 망명지라 할 수도 있다. 구체적 장소보다 관념적
분위기에 가깝다. <눈과 바다>의 도피처는
수면 위로 솟은 건물과 눈 혹은 불빛 같은 여러 개의 점들로 그려졌다. 늦은 시간, 일렁이는 바다에 빛나는 눈송이, 그곳과는 이질적인 건축물로써 미묘하고 고요하면서도
영속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분위기를 표현했다.
도피처는 반드시 안락하거나 아름답지는 않다. 미완의 이상향도 불행하지만은 않다. 이야기하려는 것은 두 영역이 지닌 속성의 다름에 대해서다. 도피처는 의식의 지향점으로서
끊임없는 떠올리기의 대상이다.
미완의 이상향은 미완이었기에 다시 발생하고 또다시 미완인 채로 사라짐을 반복하기 때문에 회자된다.
공동주최 및 후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주최, 주관 및 기획 김천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