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김단야(본명 김태연)는 일제강점기 고려공산청년당 책임비서,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16년 대구 계성학교에서 동맹휴학을 주도, 1919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상해 고려공산청년단 결성에 참여하였다. 1925년 상해로 망명하여 조선공산당 해외부 설립에 참여하다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모스크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에서 근무하였으며, 1937년 일본의 밀정이라는 혐의로 소련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 당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근현대사 인물)
생애 및 활동사항
1. 학창시절, 민족의식에 눈 뜨다
1908~1914 : 개령면 개진학교(현 개령초등학교) 입학, 진명학교를 거쳐 영진학교에서 4년간 수학 후 1914년 졸업
1915. 4. : 대구 계성학교 고등보통과 입학
1916. 12. :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시 하는 미국인 교장과 일본인 교사를 반대하는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당함
1917. 1. : 일본 동경 세이소쿠영어학교에서 6개월 간 수학
1917. 9. : 서울 배재학교 입학
1919. : 반일학생서클 가입 및 비합법신문 ‘반도의목탁’ 발간 참여
2. 만세운동에 앞장서다
1919. 3. 24
3· 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개령면 동부동에서 허철, 김종수, 최영돈 등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합의
개령공립보통학교 졸업식 및 학부모 은창서집 혼인잔치로 사람이 모였을 때 김단야가 일장연설을 하고 유동산으로 행진하며 시위를 주도함 (이로 인해 김단야는 대구지방법원 김천지회에서 태형 90을 언도 받음)
1919. 8. : 출옥 후 비밀결사 적성단을 조직, 독립군을 모집하여 만주군정서에 군자금 전달
1919. 12. : 상해망명
3. 민족해방을 위해 사회주의자가 되다
1921. 3. : 상해 고려공산청년단 결성 참여, 집행위원이 되어 기관지 ‘벌거숭이’의 편집인으로 활동
1921. 8. : 고려공산청년단 책임비서로 선임, 화동 학생연합회 서기 선임
1921. 10. : 이르쿠츠파 고려공산당 상해지부 입당 및 상해상과대학 입학
1921. 10. : 이르쿠츠파 고려공산당 상해지부 입당 및 상해상과대학 입학
1922. 2. : 각국 대표 17명과 함께 레닌회견 참석, 사회주의 사상을 확고히 함.
1922. 3. : 상해에서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을 결성하여 집행위원으로 활동
1922, 4. : 귀국 도중 신의주에서 체포되어 신의주지법에서 징역1년 6개월형을 선고 받음
1924. 1. : 출옥 후 박헌영,임원근과 함께 동아일보·조선일보 기자로 활동
1924. 2. : 신흥청년동맹 집행윙원 및 한양청년연맹, 화요회 활동 ‘레닌 회견인상기’ 조선일보 연재
1925. 말 : 2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이 되었으나, 신의주 사건으로 인한 검거를 피해 상해로 2차 망명
4. 6·10 만세운동 참여
1926. 4. 25. : 순종 사망 소식을 듣고 조선공산당 간부들과 독립만세운동 기획
만세운동에 필요한 자금 조달 및 선전격문 작성
1926. 6. 7. : 김단야가 작성한 격문 (“상(喪)에 복(服)하고 곡(哭는)하는 민중에게 격(檄)함”)이 발각되어 압수당하고 권오설이 체포됨
1926. 6. 10. 순종 장례 행렬에서 이선호(중앙고등보통학교학생)의 만세 제창을 신호로 학생들의 6·10 만세 운동 거행
5. 꾸준한 독립운동 전개
1928. 11. : 코민테른 산하 조선문제위원회에 조선공산당 문제를 검토할 참고자료 제출
1929. 11. :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워회 결성
1929. 12. ~ 1930. 6. :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에서 근무
1930. 7. : 상해에 근거지를 두고 조선공산당재건운동 지도
1931. 3. ~ 1932. 6. : 코민테른의 재정 지원을 받아 기관지 ‘코뮤니스트’ 발간
1933. 9. ~ 1934. 1. : 코민테른 동양부 지도 하에 한인반제동맹, 혁명호제 한인분회 활동 참여
1934. ~ 1936. :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조선과장으로 근무
1937. 11. : 일제의 밀정이란 혐의를 받고 소련 내무인민위원부 경찰에 최포되어 소련 최고재판소 군사법정에 의해 1급 일제 밀정으로 판결받아 1938 사형
6. 훈장
2001. 러시아 대 검찰청의 명예 복권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2005.8.15. , 광복 60주년)
7. 기타사항
개령교회는 김단야의 조부(김지옥)가 설립했다고 알려져있다.
김단야의 부친 김종원은 본래 한약방을 경영했으나, 아들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면허를 박탈 당했다. (손녀 김현숙 증언)
8.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세미나 자료집-100년전 그날, 김천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김천교육너머)
9.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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