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 감문면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우리고장 감문면

설화

공개바위

감문면 금라리 마을 서쪽 봉화산 아래에 있는 공개바위는 외국의 한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감문국을 침략할 구실을 만들고자 감문국의 장수에게 바위로 공개놀이를 제의했다. 두 장수는 공개놀이를 하는데, 감문국 장수가 실수하여 공개바위를 떨어뜨리자 외국 장수가 조롱했다. 이에 화가 난 감문국 장수가 바위로 외국 장수를 쳐 죽여 외침을 막았다고 한다.

위터재

송북 1리 송문에서 무을 상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원래는 왜퇴(倭退)재 .왜유치(倭踰峙)로 불렀다. 임진란 때에 이곳을 넘는 왜군을 포로로 했던 곳이라 한다.

여우우물

옛날 광덕 1리 탄동에 사는 유씨집에 딸이 있어 서른살이 되어도 시집을 못 가고 있었는데, 양산골에 사는 바보스런 총각과 정을 나누게 되자 아버지는 그에게는 딸을 줄 수 없다 하고 총각을 유인하여 낫으로 등을 쳐서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 그후 비만 오면 그 우물에서 여우 우는 소리가 들려와 여우우물이라고 했다 한다. 광덕저수지는 당시는 우물이었다 한다.

탄동(炭洞) 반석(盤石)의 꿈

옛날 단천교도(端川敎導)를 지낸 해주정씨 유공(由恭)이 임달(林達)이 살고 있는 감문면 광덕 2리 탄동마을로 이사를 와서 이웃하여 살았다. 임달은 기운이 세고 학문이 높았으며 풍수지리 또한 능통했다. 임달이 탄동의 산세가 좋은 까닭에 명당자리를 찾아나선 어느 날 온 산을 종일토록 찾아 헤매다 지쳐서 문수봉(文修峰)에 있는 반반한 바위에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 황룡과 흑룡 두 마리가 계곡에서 나오더니, 흑룡은 서쪽 산봉우리로 들어 가고, 황룡은 동쪽에 있는 한벽정(寒碧亭) 위로 숨어 들었다. 꿈을 깨고 일어나 생각하니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산을 내려온 임달은 유고을 찾아가 꿈 얘기를 했더니, 그는 흑룡은 임달이며 황룡은 자신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꿈대로 임달은 서쪽 봉오리 밑에 자리잡고, 정유공은 한벽정 아래에 자리를 잡았더니, 과연 두 집안이 번성하였다.

왁사골

태촌 2리 완동(完洞)은 감천의 홍수로 인근은 수침이 잦았으나 이곳은 안전하다 하여 완동으로 불려졌다 하고, 이 마을은 왁사골이라고도 한다. 옛날 탑산 아래에 있는 굴레고개에 주막이 있었는데, 보부상들이 숙식하면서 매일처럼 왁자지껄 떠들어 왁사골이라 했다.

설대(舌大)

성촌마을 앞 한길가에 옛날 설대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개령 원님이 민정을 살피려 이 마을에 들렀더니 동민들이 한결같이 능변으로 마을 자랑을 늘어 놓아 설대라 불렀다 한다.

하덕마을의 토성

이 마을 뒷산에 미륵바위가 있는데, 웃덕용 마을에서 미륵바위가 보이면 동네가 가난하게 되고, 은림리에서 보이면 처녀가 정신이상이 된다 하여, 미륵바위가 보이지 않게 흙으로 성을 쌓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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