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 감문면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우리고장 감문면

역사적 인물

김갑생(金甲生:1666~1744)

김해 김씨 운손의 아들로 감문 대양에서 태어났다. 재질이 뛰어나고 문학에 능하였으며 경학에 박통하였다. 특히 효성이 지극해 여름이면 부채로 자리를 식히고 겨울이면 몸으로 자리를 따뜻하게 한 후 부모를 모시었다. 부모의 병환에는 왕상의 얼음잉어, 맹종의 눈 댓순같은 이적이 있어 10년을 연명케 하였다. 부모상에는 전후 6년을 여묘하니 개령현감이 누차 조정에 효행으로 추천하였다. 이복이 효자전을 지었으며, 1800년 향리인이 감문 천동(대양)에 효자비를 세웠다.

김해종(金海宗:1684~?)

김해 김씨 효자 갑생의 아들로 감문 대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오하고 학업에도 열중하였다. 부친의 병환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더니, 엄동설한에 부친이 꿩고기를 먹고 싶어 하였다. 공이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 있으니, 꿩이 절로 품안으로 날아 들었다. 부모 상에는 3년을 여묘하며 곡성이 끊이지 않았다. 향리에서 성금을 모아 부친의 효자비와 나란히 공의 효자비를 세웠다.

정란(鄭鸞:중종조~인조조)

해주 정씨 석견의 조카로 감문 탄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재우요, 호는 운재(雲齎)이다. 뜻이 곧고 호학하여, 중종조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명이 높았다. 1537년 성균관 대학생으로 정암 조광조의 신원을 합소할때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경양찰방으로 선정을 베풀고, 1555년 승지에 이르렀다. 작고 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정붕(鄭鵬:1467~1512)

해주 정씨 현감 철견의 아들로, 감문 탄동에서 태어났다. 기상이 광휘하고 풍채가 쇄락하였으며 한훤당 김굉필을 사사하여 퇴계도 공의 학문이 깊고 정밀하다고 칭찬하였다. 공은 목민관으로서 청백리였고 향풍을 쇄신한 유종이었다. 구미 금오서원과 개령 덕림서원에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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