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곳

삼산이수

금릉은 김천의 별호인데, 예로부터 삼산이수의 고장이라고 했다.
1949년 김천군의 김천읍이 시로 승격되고 나머지 지역인 김천군은 별호를 따서 금릉군으로 개칭되었다. 금릉이란 말은 옛날(서기 314년) 중국 동진(東 晋)이란 나라가 서고 건업(建業)에 도읍하여 수도를 금릉이라 한데서 유래된다.

그 뒤 여러번 나라가 바뀌면서도 이곳에 도읍했기 때문에 고도 (古都)로서 유적이 많고 경관이 아름다워 역대 시인들이 즐겨 시제에 올렸다.
그 대표적인 예가 李太白의 <금릉 봉황대에 올라(登金陵鳳凰臺)>라는 것인데, 이태백은 최호(崔顥)의 <황학루에 올라(登黃鶴樓)>라는 시에 감복되어 이와 겨루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태백의 시 가운데 ' 金陵(금릉)'이니 '三山二水(삼산이수)'니 '鳳凰臺(봉황대)'니 '黃鶴山(黃 岳山이라고도 한다)' 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데, 김천 지방의 여러 이름 들도 모두 거기에서 따온 것이다.

'三山'은 중국 금릉에 있는 산으로 세 봉우리가 있어 이름하고, '二水'는 백로주섬을 사이에 두고 두 줄기로 갈라진 진천(秦川)과 회천(淮川)을 말한다.
이 시에서 '삼산이수'를 따서 이곳 금릉에서는 자산.황산(凰山). 응봉산(鷹峰山)을 '삼산'이라 하고, 직지천. 감천을 '이수'라 하였다.
삼산은 새(鳳: 자고새, 凰: 봉황새 암컴, 臺: 매)와 연관된 이름인데, 지금은 자산을 '尺山(척산)', '紫山(자산)'으로 표기하는데 이는 성내동에 있고, 황산은 '黃山'으로 표기하는데 이는 죄좌동에 있으며, 응봉산은 '매봉산'이라 이르는데 이는 신음동에 있다.

이러한 삼산의 비정(比定)은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현대의 김천을 상징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 하여 1975년 김천시민탑을 건립하면서 자연의 경관이 침식되지 않은 황악산 (黃岳山).고성산(高城山).금오산(大德山)으로 범위를 넓혀 김천의 자연환경을 상징하는 삼산으로 삼기로 김천문화원에서 결정하였으나, 금릉문화원에서는 1994년 3월 16일 정기총회에서 황악산. 금오산. 대덕산을 삼산으로 결정하였으며, 시군 통합 후에는 이를 김천시의회에서 양해하는 형식으로 굳어졌다.

과하주천

김천시 남산동에 '과하주샘'이란 샘이 있었데, 그 뒤편 암석에는 '금릉주천(金陵酒泉)'이라새겨져 있다. 이 샘물로 술을 빚으면 그 술맛과 향기가 몹시 좋아 연산주(礪山酒. 익산), 호산춘(湖山春. 문경)과 더불어 김천의 과하주는 국내 3대 명주의 하나로 이름이 높았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술 빚는 방법을 배워 가서 아무리 똑같이 빚어도 과하주와 같은 술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물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과하주샘을 주천이라고 했다.

한편 아주 옛날에 이곳에 금이 나는 샘이 있어 금지천(金之泉)이라 했는 데, 김천(金泉)이란 지명도 이에 연유했다고 한다. '금지천'에서 나는 금을 해마다 나라에 공물로 바쳤는데, 해가 갈수록 공물의 양이 늘어나 주민들의 노역이 과중해져 견딜 수 없게 되자 주민들이 그 샘을 메워 없앴다고 한다. 지금의 과하주샘은 금이 나던 샘과는 다르다고 하는데, 그 위치는 알지 못한다.

여산ㆍ아산ㆍ김산

"여산이 망하고 아산이 되고, 아산이 망하고 김산이 되었다" 고 구전되고 있다. 여산은 지금의 감문면 문무리인데 윗마을은 상여(上余), 아랫마을은 하여(下余)이고 합쳐서 여산(余山)이다. 구전으로는 이곳은 옛날 문무국(余山 文武國 )의 도읍지라 한다.
아산은 지금의 아천(牙川)으로 어모면 중왕리인데, 옛날 어모국(禦侮國)의 도읍지라 한다. 요컨대 문무국이 망하고 어모국이 서고, 어모국이 망하고 김산이 섰다는 것이다.

김천 유기

옛날에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여름에는 사기그릇, 겨울에는 놋쇠그릇 즉 유기를 사용했는데 근래에는 스테인리스그릇에 밀려나 자취를 감추었다. 김천의 유기는 안성의 유기와 더불어 전국에서도 명산지로 이름이 높았 는데, 그 가운데 징과 꽹과리만이 특산품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김천의 유기가 번성한 데는 그 까닭이 있다. 최송설당의 (금릉풍경)에 따르면 모암산의 '사모바위' 는 신랑이고, 황금동 약물내기에 있는 바위는 '할미바위'라 하여 신부에 해당한다. 이 신랑 신부의 혼례에는 죄좌동에 있는 황산이 차일(遮日)이 되고 하로(賀老)는 상객이 되어 마좌산(馬佐山)의 말을 몰아 용두방축 동자상(童子床)에 약수동 술잔에 과하주를 가득 부어 교배례를 지내는지라 혼인 잔치에 쓰이는 그릇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김천의 지형

김천은 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싸고 감천이 흐르는 동북만이 열린 소쿠리형인데, 소쿠리 안이 물건으로 차면 반드시 비워지기 때문에 이곳에서 재산을 모은 부자는 대를 잇지 못하고 당대에 타처로 떠난다고 한다.
김천 북쪽에는 사모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할미바위가 있다. 사모바위는 신랑이고 할미바위는 신부인데, 이 남녀의 혼례에는 하로(賀老. 양천동)가 상방(上房)이 되고, 지좌동의 황산은 신방의 병풍이다. 두 바위 중간에 가마바위(고성산에 있는데 그 위치를 알 수 없다)가 있고, 비녀바위(고성 산에 있는 촛대바위를 말한다)가 있다. 이처럼 김천의 풍수지리적으로 혼인형(婚姻形)이기 때문에 남녀간의 애정문제가 잦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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