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곳

성내동

성내동과 모암동에 걸쳐서 가운데 앉은 산을 이르러 자산(紫山·尺山)이라 한다.

산의 남쪽은 언덕배기인데 옛부터 큰 마을이 있어 자산 마을이라 불렀다.

동으로는 모암동 시가지와 이어지고 서로는 평화동과, 남으로는 남산동과, 북으로는 서에서 동으로 흘러내리는 직지천을 경계로 하여 신음동과 마주한다. 공공기관으로는 교육청이 있으며, 자산 마을 밖으로는 상가가 대부분이다.

조선시대 말까지는 오늘날의 중앙초등학교에서부터 철도 건너 시교육청으로 능선이 이어져 있으며, 자연부락이었던 자산마을이 있을 뿐이었다. 1905년 무렵 경부선 철도가 개설되고 뒤이어 국도가 만들어짐에 따라서 1920년을 전후하여 시가지가 이루어졌다. 1909년 일본식의 마을이름을 붙이면서 죠나이마치(城內町)라 하였다가 광복 이후에 우리말 식으로 하여 성내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962년에 1동과 2동으로 나누었다가 1983년에 이르러 시조례에 따라서 통합하여 오늘날까지 그리 부른다.

뒷방마

그 이후 일본인들의 상가가 점차 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김천 상가의 중심으로 발전되어 갔다. 1914년 김천면 금정으로 일본식 동명이 붙여졌고 광복후 1947년 자산 동남쪽에 우뚝 솟은 사모바위 일명 삼바위를 지명으로 삼아 마을이름을 모암이라 하였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성안·성내

이 마을은 김천역(驛站制) 안쪽에 위치하였다고 하여 성안·성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상신기동과 갈마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성내정이라 했다가 1946년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식으로 고침에 따라 정을 동으로 고쳐 성내동이라 불러오고 있다.

자산

이곳에 있는 산의 바위가 해질 무렵이면 자주색 빛을 낸다 하여 이 산을 자산이라 했다 한다.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부터 이 자산을 서서히 깎아 그 자리에 마을이 이루어지자 이 산의 이름을 따서 마을이름을 자산이라 했다고 한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물령동

지금의 교육청 앞 한길 건너쪽 충혼탑 아래에 물명못이란 못이 있어 그 일대를 물명동이라 했고 일제시대에 못이 매립되었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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