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곳

라(羅)벌들

신룡 1리 마을 동쪽에 있는 들인데, 옛날 이 마을에서 태어난 라(羅)씨 성의 장수가 장수천(지금은 폐동이 되어 농경지로 변한 옛 하신마을에 있었다는 우물로 이물을 마시면 힘센 장군이 된다는 신비의 샘) 의 샘물을 마시고 성장해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하여 그를 기리어 붙여진 이름이다.

대적(大賊)들

덕촌 1리의 두 마을 앞 어모천(牙川) 북쪽에 있는 들인데, 옛날에는 이곳에 몇 집이 살았다 한다. 자주 도적들이 침범하여 폐동되었는데, 뒤에 대적들, 대징이들이라 부른다고 한다.

계림사(鷄林寺), 취적봉(吹笛峰)

동부 1리 마을 뒤 삼성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이절은 직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서기419년(신라눌지왕3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일설에는 계림사가 위치한 호두산이 풍수지리설로 볼때 기운이 너무 세어 맞은편 아포 대신마을에 살상(殺傷)의 기운이 뻗치는지라 그 기운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짓고 호랑이와 상극인 닭을 천마리나 길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닭조차 수시로 폐사하는지라 궁여지책으로 절 이름을 닭이 숲을 이루어 산다는 뜻의 계림사로 고치고 닭 기르는 것을 대신했다고 한다.

계림사뒤로는 감문산의 여러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해발 3백미터의 취적봉이 있는데 옛날 감문국 시절에 나라에 큰 변고가 일어나면 이곳에서 나팔을 불어 급변을 알려 군사를 모이게 했다 하여 불 취(吹)에 피리 적(笛)자를 써서 취적봉이라 했다고 하며 또 변란시에 봉화불을 올렸다하여 일명 봉화산으로도 불린다.

내황골(內皇谷)

광천 1리 양천마을 뒤 골짜기에 내황골이 있는데, 감문국의 별궁터로 내황실(內皇室) 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당고산(撞鼓山)

광천 1리 양천마을 뒷산으로 내황골을 품고 있는 해발 140미터의 당고산은 옛 감문국 시절에 큰일이 있으면 이곳 산 정상에서 북을 쳐서 알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원룡장군수(元龍將軍水)와 바위배기

광천 2리 빗내(橫川)마을 남쪽에 있는 산 언덕에 '원룡장군수'전설은 빗신제를 지낼때 제물인 돼지를 손질하는 산제당우물과 관련이 있다. 그 우물은 마을 뒷산인 사달산 너른골자락에 있는데 옛날 진동이란 총각이 부친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하던중 꿈에 산소옆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면 승천한다는 두 소년의 말을 듣고 그 물을 마셨더니 힘센 장사가 되었다고 한다. 진동은 사달산 좁은골에 있는 용천바위를 깨어 마을 앞 들판에 다리가 없어 징검다리를 놓으려고 큰골쪽으로 짊어지고 내려오다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그 바위가 땅에 박혔는데 그 바위는 아무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지금도 그 자리에 박혀 있다 한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바위가 박혀 있는 자리를 '바위배기'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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