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곳

장지도(張志道)의 제자

교 1리에서 있었던 일로 고려 충혜왕 때 장지도란 이름난 학자가 있었다. 그에겐 아들이 없었는데 제자 중에 윤은보(尹殷保)와 서질이라는 사람은 스승을 친부모처럼 극진히 모셨다. 스승이 죽자 윤은보는 스승의 모덤 앞에서 3년간 시묘를 했는데 어느날 꿈자리가 이상해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마치고 제사를 올리는데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어와 제상 앞에 놓인 향로가 날아가 버렸다. 몇달 후 까마귀가 그 향로를 물고 와서 묘 앞에 두고 갔다. 윤은보는 아버지 때문에 스승에 대한 제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 신령이 내린 계시라 생각하고 삭망(朔望)때 그 향로를 스승의 묘에 가져 가서 썼다고 한다.

똥재

교 1리에서 성주로 넘어가는 고개는 원래 동산재(東山峠) 또는 동치(東峠 )인데, 옛날 지례현이 경산부 산하에 있을 때 성주목사의 부름을 받고 성주로 가는 현감이 가마를 타고 가는데 가마꾼이 높은 재를 넘을 때는 힘이 들어 똥 쌀 지경이라 하여 똥재라 했다 한다.

문질(門質)

도곡 1리에 있는 문길이란 마을은 한자로는 文吉. 門質로 쓴다. 이곳에 옛날 주막이 한 집 있었는데, 하서면(부항면)과 상현면(지례면)의 경계선 상이라 문을 열고 서쪽으로 가면 하서면이고 동쪽으로 가면 상현면이라 하여 문질(문길)이라 한다고 전한다.

활남

관덕리는 우리 말로 활남이라 했다. 이곳 활남에서 활을 쏘고 서쪽 산너머에 있는 속시(束矢. 속수)에게 화살을 모았다고 한다.

속시(束矢)

여배 2리 속수마을은 활남에서 쏜 화살이 산을 넘어 이곳에 떨어지면 한 데 모아 묶어서 활남으로 가져간다고 한다. 이래서 속시인데 변해서 속수(速水)가 되었다 한다.

구수(九水)골

관덕리 구수곡은 구시골. 구습골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 아홉 골짜기의 물이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또 옛날 마을 윗쪽에 큰 바위가 있어 이를 일으키니 구슬이 담긴 구유(구시)가 있어 꺼내려는 찰나 번개가 쳐서 그냥 덮어 두었다고 하여 구시골. 구슬곱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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